
영화 편집자 출신 줄리안 도일이 최근 인공지능(AI)을 내세워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화제성과 신뢰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도일의 주장은 마치 AI가 2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역사적 합의를 무너뜨린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증거의 발견이라기보다 오래된 비주류 가설을 최신 기술로 재포장한 사례에 가깝다.
특히 "AI가 내 이론을 인정했다"는 주장은 언뜻 과학적 검증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역사학적 증명과는 거리가 멀다.
AI는 증거를 발굴하지 않는다.
AI는 재판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다.
입력된 전제와 질문에 따라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언어 모델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란은 "예수의 십자가형이 뒤집혔다"기보다 "AI가 얼마나 쉽게 권위의 외형으로 활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영화 편집자가 수천 년의 역사 연구를 뒤집었다?
줄리안 도일은 「몬티 파이튼의 브라이언의 삶」, 「몬티 파이튼과 성배」 등에 참여한 영화인이다.
문제는 그가 성서학자도, 고대사 전문가도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학자가 아니라고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광범위한 연구 성과와 수많은 문헌 분석을 뒤집으려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사료와 증거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만 보면 도일은 기존 학계가 수백 년 동안 검토해 온 문제를 새로운 자료가 아닌 새로운 해석만으로 뒤집으려 하고 있다.
이는 혁신이라기보다 비약에 가깝다.
도일의 주장은 무엇이 문제인가
도일은 로마가 처형한 인물이 예수가 아니라 갈릴리 사람 유다였으며, 초기 교회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혼합해 오늘날의 복음서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가설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가설은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독립적 사료와 검증 가능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도일은 기존 기록의 빈틈과 복음서의 차이를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의 결론을 입증할 만한 새로운 역사적 자료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 연구에서 "기존 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내 설명이 맞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도일은 이 두 단계를 지나치게 쉽게 연결하고 있다.
AI가 인정했다는 주장, 왜 위험한가
도일은 ChatGPT, Claude, Gemini, Grok, DeepSeek 등 여러 AI가 자신의 논리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과장한 표현에 가깝다.
AI는 진실을 판정하지 않는다.
AI는 주어진 정보 안에서 논리적으로 보이는 답변을 생성할 뿐이다.
만약 특정 가설에 유리한 자료만 입력하면 그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일 수 있다.
반대로 학계의 반론과 반대 증거를 함께 입력하면 전혀 다른 답변이 나올 수도 있다.
즉 AI가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 여부와 거의 무관하다.
그럼에도 이를 "AI가 입증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검증과 홍보를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복음서의 모순을 발견했다고?
더 놀라운 점은 도일이 내세우는 핵심 근거가 사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음서 간 차이와 서술상의 긴장은 수백 년 동안 성서학계가 연구해 온 주제다.
이는 학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도일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논쟁거리를 마치 결정적 발견인 것처럼 제시한다는 데 있다.
복음서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는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존재한다.
도일은 바로 그 비약을 자신의 이론으로 채우고 있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추정과 가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끌리는가
이런 주장이 반복적으로 관심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최대의 사건이 사실은 거짓이었다."
"AI가 2천 년 전 역사를 뒤집었다."
이런 문장은 클릭을 부르기에 매우 좋은 소재다.
하지만 자극성과 사실성은 별개다.
역사학은 충격적인 주장보다 증거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현재까지 도일의 주장은 충격은 크지만 증거는 빈약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기독교 역사를 뒤흔들 발견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음모론인가
현재 단계에서 도일의 주장을 역사적 돌파구로 평가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오히려 기존 자료를 선택적으로 해석해 거대한 결론을 도출한 사례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새로운 가설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자유다.
그러나 자유로운 가설과 입증된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도일은 예수의 십자가형을 뒤집었다기보다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추측을 AI의 권위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이번 논란의 진짜 교훈
이번 사건의 핵심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다.
AI에 대한 대중의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어떤 주장을 지지하면 그것이 객관적 검증을 통과한 사실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AI는 진실을 판별하는 기계가 아니다.
오히려 사용자의 전제와 편향을 매우 그럴듯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도구다.
결국 이번 논란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 아니라, "AI라는 이름이 붙으면 근거가 빈약한 주장도 과학처럼 보일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가능성이 더 크다.
현재로서는 도일의 이론이 역사학계를 흔들었다고 보기보다, AI의 권위를 빌린 또 하나의 선정적 역사 재해석으로 평가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